제목 | 「대한독립에 헌신한 외국인」 기념우표 발행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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전화번호 | 044-200-8226 |
「대한독립에 헌신한 외국인」기념우표 발행 - 태극기를 배경으로 헐버트와 베델의 모습 우표에 담아 -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(본부장 손승현)는 일본의 침략에 맞 서 싸운 「대한독립에 헌신한 외국인」을 주제로 기념우표 64만 장을 12 일 발행한다. 기념우표는 총 2종으로 펄럭이는 태극기를 배경으로 헐버트와 베델의 모습을 담았다. 기념우표의 변지에는 헐버트의 업적인 사민필지와 아리랑 악보, 베델이 창간한 대한매일신보와 유품인 태극기를 담았다. 1886년에 처음 한국에 들어와 최초의 근대식 공립학교인 육영공원의 교 사로 활동한 호머 베잘렐 헐버트(1863~1949, 한국명 ‘헐벗’)는 1891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교과서인 사민필지를 저술했다. 우리나라 최초의 한 글 신문인 독립신문의 창간을 돕고 영문판의 편집 업무도 담당했다. 1905 년에는 고종 황제의 밀사로 미국을 방문해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호소하고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로 한일 협약의 부당함과 일본의 침략주의를 규 탄했다. 이후 미국에서도 한국의 국권 회복을 위해 38년을 투쟁한 헐버트 는 1949년에 “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길 원하노라” 라는 유언에 따라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안치됐다. 1950년에 건국훈장 독 립장(당시 태극장)에 추서돼 대한민국의 독립에 끼친 공로를 인정받았고, 2014년에는 한글에 관한 공로로 금관문화훈장에도 추서됐다. 1904년 러일전쟁 직후 데일리 크로니클의 특파원으로 한국에 들어온 어 네스트 토마스 베델(1872~1909, 한국명 ‘배설’)은 대한매일신보와 코리 아 데일리 뉴스를 창간해 강력한 항일 논조로 일제의 만행을 규탄했다.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반대를 시작으로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주장하고 고 종이 을사늑약에 서명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친서를 게재하는 등 일본의 침략을 폭로했다. “나는 죽을지라도 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 민족을 구 하라”라는 유언을 남기고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안치된 베델은 1968년에 는 대한민국 건국훈장이 추서돼 공로를 인정받았다. 기념우표는 가까운우체국을 방문하거나 인터넷우체국(www.epost.go.kr) 에 신청하면 구매할 수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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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일 | 2022-08-12 |
담당자 | 송명수 |
담당부서 | 홍보협력담당관 |